산 정상에서 만난 유자크림빵, 예상 밖의 조화
빵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니다.
밥을 좋아하고, 간식류도 많이 찾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가끔씩 새로 나온 빵이나 한정판 제품이 눈에 띄면 호기심에 한 번쯤은 먹어보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유자크림빵’이라는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크림빵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흰 우유크림이나 휘핑크림 같은 건 뒷맛이 느끼해서 한입 먹고 남길 때가 많다.
하지만 모카크림은 예외다. 어릴 적 먹었던 모카빵의 기억 때문인지, 모카 특유의 쌉싸름한 향과 부드러운 질감은 늘 반갑다. 그래서 크림빵이라고 해도 모카라면 손이 가는데,
이번에는 ‘유자’였다.
유자. 새콤달콤한 향긋함,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상큼함. 왠지 무거운 크림 속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매력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유자크림빵을 구입해 가방에 넣었다.
사실 집에서 먹을 생각은 아니었고, 그 주말에 계획한 산행 길에 가져가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비교적 완만한 산이었다.
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무리하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코스를 골랐다.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맺히는 길, 그래도 바람은 선선했고 날씨는 맑았다.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가방을 열고 유자크림빵을 꺼냈다. 포장을 벗기자마자 퍼지는 유자의 향기. 상상보다 훨씬 진하고 향긋했다.
한입 베어 물었더니 부드러운 빵 사이로 유자향이 가득한 크림이 퍼졌다. ‘아, 이래서 유자였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반적인 크림빵이 느끼함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유자크림빵은 입 안 가득 퍼진 유자 향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상큼한 맛이 뒷맛까지 이어져 산 정상의 바람과도 묘하게 어우러졌다.
거창하지 않지만, 오롯이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혼자 먹기 아쉬울 정도로 괜찮았다.
물론 누군가는 유자향이 너무 강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일반 크림빵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이 유자향이 매력적인 균형을 만들어줬다.
모카크림과는 다른 방향의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내려오는 길, 괜히 또 다른 계절에 이 빵을 다시 먹으면 어떨까 상상하게 됐다.
겨울 눈 덮인 산 위에서도 잘 어울릴 것 같고, 봄바람 부는 들판에서도 산뜻할 것 같다.
유자라는 재료가 지닌 계절감 때문인지, 그런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빵 하나가 주는 즐거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마 평소 같았다면 그냥 스쳐 지나쳤을 신제품이었을 텐데, 산 위에서 만난 유자크림빵은 나름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끔은, 새로 나온 빵 하나에 마음을 열어볼까 싶다.
언젠가 또, 예상치 못한 조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