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느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말은 잘 안 들으시면서, 유독 내 말엔 귀를 기울이셨다.
어느 날은, “그 말도 맞지” 하며 말없이 등을 돌리셨고, 또 어느 날은 내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에게 아들이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어떤 존재였다는 걸.
아들은 아버지에게 단순한 자식이 아니다.
때로는 젊은 시절 자신의 거울이 되고,
때로는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대신 이어주는 계승자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많은 걸 말씀하시진 않지만,
그 눈빛과 행동, 그리고 침묵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나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
딸은 다정하게 품에 안기고 싶은 존재라면,
아들은 묵묵히 등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다.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말없이 바라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깊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신처럼,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담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젠 내가 아버지에게 조언을 건네고,
아버지가 내 눈치를 보듯이 나를 따라주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 아버지에게 나는 단순히 아들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자 평생을 함께 걸어온 벗이 되어가는구나 싶다.
어릴 적엔 왜 그렇게 엄격했을까 싶었던 모습도,
지금은 이해가 간다.
그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고,
어설픈 말보다 깊은 행동이었던 거다.
아버지에게 아들이란,
'언젠가는 나보다 더 든든한 존재가 될 사람'이고,
'말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며,
'가슴 한켠에 평생 간직하고 싶은 내 젊은 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덧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진다.
그제야 진심으로 알겠다.
내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를.
아버지, 늘 제 말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