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복날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예전엔 삼복더위에 맞서 몸을 보신하는 의미로 꼭 챙겨 먹었던 삼계탕이나 백숙이 대표적이었죠.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이 음식들은 기력 회복과 원기 보충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복날만 되면 집안 가득 인삼과 대추, 찹쌀의 향이 퍼졌고, 솥뚜껑을 열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삼계탕은 그야말로 여름을 이겨내는 의식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복날 풍경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삼계탕과 백숙만이 아니라, 다양한 보양 음식들이 복날 식탁에 오르곤 하죠. 장어구이, 한방 갈비탕, 전복죽, 심지어 보양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음식들까지 사람들의 선택지에 오르며, 복날을 즐기는 방식도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올해 복날, 특별한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던 중 집 근처에 있는 추어탕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나름 단골손님이 많은 곳이었지만, 이날은 평일 오후임에도 유난히 테이블이 꽉 차 있었습니다.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부부,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이 앉아 따뜻한 추어탕 한 그릇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아, 요즘 복날 음식의 풍경이 정말 바뀌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 끓인 국물에 시래기, 들깨가루 등을 넣고 푹 끓여내는 보양 음식입니다.
고소하고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고,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여 기력 회복에 탁월하다는 이유로 예로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죠.
예전에는 다소 생소하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으로 여겨졌던 추어탕이지만, 이제는 복날에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삼계탕과 백숙이 조금은 식상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몸에 열이 많아 삼계탕보다는 추어탕이 더 잘 맞는다”는 의견도 많아지며, 이런 음식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날 추어탕집에서는 “복날이라 오랜만에 추어탕 먹으러 왔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꼭 닭고기 요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잘 맞고 몸을 보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해 먹는 문화가 더 중요해진 것이겠지요.
요즘은 식당들도 복날을 마케팅 포인트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복날 보양식 할인 이벤트”, “삼복 특선 메뉴” 같은 안내문들이 식당 앞에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죠.
덕분에 집에서 땀 흘리며 끓이지 않더라도, 가볍게 외식하며 복날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참 반가운 변화입니다.
예전엔 복날이면 당연히 ‘닭을 푹 삶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요즘은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건강을 챙기고 복날을 기념하는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이는 혼자 편의점에서 보양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더위를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복날, 그 의미는 여전히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보양’이겠지만, 그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가 더욱 넓어졌다는 점에서 저는 오히려 요즘의 복날 풍경이 더 건강해 보입니다.
저도 올해는 추어탕 한 그릇으로 속을 뜨끈하게 달래며, 땀 한바가지 흘리며 여름을 맞이했습니다.